나에게는 써두고 좀처럼 펴보지 않는 문장들이 있다. 책을 읽고 습관적으로 문장들을 기록하는데 의식적으로 그걸 다시 펼쳐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반 쯤은 게으름 때문이고, 반 쯤은 타성에 젖은 일상 때문이다. 

요즘 들어 잠 못 드는 밤들이 부쩍 늘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전에 쌓아둔 문장들을 하나 씩 꺼내보곤 한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써놓기만 하고 좀처럼 들여다 보지 않던 문장들을 다시금 곱씹으면서, 잊고 살았던 누군가의 외침을 본다. 깨달음을 본다. 그 글을 읽었던 순간의 감각들을 읽는다.

“책은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 위한 도끼임에 틀림없다”라고 말한 카프카의 유명한 격언이 있다. 나도 카프카의 신념처럼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 위해 책을 읽어 왔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래도록 메모장에 잠들어있던 그 수많은 문장들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망각된 그대로 녹이 얼룩덜룩 들러붙어 바다 속에 잠겨 있었다. 그 문장들을 다시 꺼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어 있던 문장들을 다시 건져내어 들러붙은 녹을 긁어내고, 다듬고, 갈아서. 다시 도끼가 될 수 있도록. 도끼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일상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바람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 망각되었던 문장들을 밤의 수면 위로 건져내 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 문장들이 다시 숨을 쉬고, 새 옷을 입고, 작은 바람을 일으키며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작은 깨달음이, 일상을 살아낼 결심이, 조용한 위안이, 잔잔한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밤

한참 청춘의 불안과 범람하는 자기혐오들로 집 밖을 나서기가 무서웠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자취방의 갈색 블라인드를 창문 끝까지 내리고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러고 한참을 죽어있다가, 밤이 찾아오는 소리에 맞추어 블라인드를 열고 밤의 서늘한 공기를 맞아들였다. 날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던 낮의 혼란스러운 소란이 내려앉는 그림자와 함께 천천히 가라앉고 밤의 종소리가 그 시작을 소리 없이 알릴 때, 내게 찾아 오는 위안과 안정이 있었다. 그럼 다시 다 괜찮아지리라고, 오늘의 괴로움과 우울도 내일 아침이 되면 다 괜찮아지리라고 말하는 밤의 속삭임이 내 곁을 안개처럼 맴돌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조금 힘들고 아프더라도, 나에게는 언제고 내 곁을 찾아오는 밤이 있을테니까. 

조금은 불안했던 그 시기들은 나를 스쳐 지나갔지만 아직도 내게 있어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낮 시간 때에 아무 의미를 갖지 않던 것들이 밤이 되어 노란 가로등 불빛에 그 가장자리를 희미하게 빛낼 때, 모든 게 괜찮아지리라는 고요한 위안이 나를 찾아온다. 밤에 배운 위안은 내일의 삶을 다시 살아낼 음악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 지난 밤 들었던 음악에 몸을 맡기고 다시 하루를 살아내리라 결심한다. 그럼 나는 다시 일어서고, 다시 살게 된다. 오늘의 밤은 어떨지를 상상하며, 다시금 내려앉을 밤의 위안을 생각하며.

   📌 문장들 #밤

• 오늘도 나에겐 밤이 있지, 심지어 밤은 매일 있어, 라고 생각할 때의 은밀한 희열이 있다. 밤에 읽는 책은 낮에 읽는 책보다 명료하다. 밤에 듣는 음악은 낮에 듣는 음악보다 우아하다. 밤에 하는 생각은 낮에 하는 생각보다 반자본적이다.

-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윤주, p.183

•  “<역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밤보다는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린 생각이에요.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정도밖에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우리 시야가 제한되죠. 하지만 밤에는…… 밤에는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눈에 보이죠. 밤에는 멀리 보입니다. 우주를, 그리고 시간을 보는 겁니다.”

- 파피용, 베르나르 베르베르, p.122. 

• 나는 낮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햇빛이 모든 색깔을 퇴색시키며 짓누른다. 밤에 대해서는 잘 기억한다. 밤의 푸른빛은 하늘이 더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늘은 세상의 본질을 덮고 있는 모든 불투명함의 저편에, 그 너머에 있었다. 나에게 하늘은 밤의 푸른빛을 가로지르는 순수한 광채와 모든 색깔을 초월한, 차갑게 녹아드는 빛을 떠오르게 한다. ……밤은 하루하루 새로웠다.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밤의 소리는 들개들의 소리였다. 그들은 신비를 향해 짖어 대고 있었다. 그들은 밤이 만들어 낸 공간과 시간이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이 마을과 저 마을에서 서로 화답하며 짖어 댔다.

-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p.98

• “밤 하늘이 맑으면 우리는 수백만 년 전, 아니 수십억 년 전의 우주를 다시 보게 되는 것이지. 말하자면 그렇게 해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올려다보는 셈이다.” “너와 나도 대폭발과 더불어 존재하기 시작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유기적인 통일체이기 때문이다. 태초의 어느 순간에 모든 물질은 한덩어리로 뭉쳐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너무도 엄청난 질량을 지니고 있었다. 아주 작은 크기지만 무게가 수십억 톤이나 되었지. 이 ‘최초의 물질’이 엄청난 중력 때문에 폭발했다. 모두 산산조각이 났지. 우리가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란다.”

- 소피의 세계, 요슈타인 가아더.

✳️ 대가를 바라지 않고 좋아하는 일

번아웃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2022년의 목표 중 하나는 ‘본업과 상관없으며 직관적이고 순수하게 재미있는 일 찾기’였다. 다르게 말하면 ‘대가 없이 좋아하는 일 찾기’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된 내게 그런 일이 하나 있다면 잘 쉬는 게 뭔지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내가 어떤 일에 시간을 많이 쏟았고 여전히 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영화와 전시는 예전처럼 보지 않고, 게임은 중독적이고 재밌지만 어쩐지 시간을 낭비했다는 불쾌함을 지울 수 없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는 성취감이 있지만 써먹을 일이 없었고 한 번 빼먹으면 계속하지 않는 종류의 일이었다.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거나, 보상을 바라면서 했던 것들이다. 남은 건 음악 듣기 뿐이다.

음악을 찾고 듣는 일은 그야말로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일이었다. 너무 많이 듣거나 아예 듣지 않아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피곤함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주는 해방감, 잊고 지내던 가수와 노래를 만날 때의 반가움, 새롭게 좋은 노래를 찾았을 때의 쾌감, 신인 가수의 첫 앨범을 들으며 응원하는 즐거움, 좋은 가사를 볼 때 느껴지는 풍족함, 앨범 커버와 노래가 잘 어울릴 때 드는 만족감.. 게다가 듣는 것이 일이 될 일도 없다(제일 중요⭐️). 좋은 점이 끝도 없다. 

그러나 내가 음악 듣기를 오랫동안 좋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당장의 번아웃과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력의 첫 번째 방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써보려고 한다. 다르게 듣는 방법은 없는지, 좋아하는 노래는 왜 좋은지, 싫어하는 노래는 왜 싫은지, 사람들은 어떨 때 무슨 노래를 듣는지 탐구하는 마음과 애정을 담아 글과 플레이리스트로 풀어 볼 예정이다. 이 뉴스레터를 하나씩 마감할 때마다 ‘잘 쉬었다!’라는 기분이 들기 바라며.

🎇 Playlist : Happy Songs in a Sad World

시작을 기념하는 플레이리스트는 좋아해서 아끼는 노래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테마나 장르적 공통점이 없어 이렇게 엮은 게 의아할 수도 있을텐데, 행복하지만은 않은 세상에서 기분 좋은 리듬과 멜로디로 이야기하는 노래들을 엮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가사도 함께 보시면 좋고요,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저는 주로 날씨가 좋은 주말 아침이나 부정적인 기분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들어요. 들으면서 좋아하는 일이 뭔지, 더 좋아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Nothing is gentle

They will think you're mental

If you want to scream out loud

Do until they hear you out

좋으면 좋은 거지 좋아하면 하는 거지

하면 또 더 하고 싶지

그럼 진짜 좋은 거지

-임금비, 908 중

✳️ 미성숙한 밤의 기록들

모든걸 쏟아내고 터벅터벅 들어온 어둑하고 건조한 집에서 멍하니 앉아서 왜 내마음이 불구덩이 같은지, 왜 내 마음이 이리도 불편한지 누군가에게 말하면, 글로 써내려가면 나의 부족함과 상처를 마주하게 될 것을 알기에 애써 외면하고 밀어내며 마음이 곪아가는 것을 알아도 용기내지 못한 숫한 밤들이 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는걸 깨달은 순간에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모른채 한 자도 적지못하고, 목구멍까지 나온 단어들을 애써 삼키며 봉인했다. 마침내 용기내서 적은 한 단어가 외면의 장벽을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고, 나의 상처와 부족함을 마주하게하며 도리어 나를 강해지게했다. 

완전한 성숙이란 없다. 완벽한 내 모습도 없다. 완전한 밤도 없다. 그저 미성숙한 풋밤의 기록들이 쌓여 좀 더 단단한 나를 만드는 거름이 될 뿐. 나를 나아가게 해준 풋밤에 마주한 나의 마음기록들을 나와 같은 마음을 느꼈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또 앞으로 마주할 풋밤들을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다. 

🌌 새벽이 좋은 이유

여러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본다. 그리고 기다린다. 내 선택이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현장의 모습을 변화하게 만든다. 전화가 울린다.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받는 중에 또 전화가 온다. 전화를 건다. 다들 제 각각 자기들의 얘기를 한다. 본인들의 말을 하고 나에게 답변을 요구하고 본인에게 유리하게 말을 하기도, 원하는 방향을 넌지시 던져보기도 한다. 내 앞에는 눈동자도 있고 그들을 움직이게 해야할 선택지도 있다.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도 놓여있다. 소리가 나는 벨소리에서 진동으로 바꾸고도 왜 이 핸드폰은 무음은 없을까 생각할 때 또 핸드폰이 지잉 울린다. 반사적으로 진동을 끄고 핸드폰을 뒤집는다. 

이 모든 게 없는 새벽이다. 나한테는 새벽이 있다. 잊지 않고 빠짐없이 찾아와주는 반가운 새벽이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은 아니다. 내일이 와도 좋다. 다만 이 새벽이 끝도 없이 길어지길 바라는 마음일 뿐. 지독하게 조용한 새벽은 나의 주간과 대비되어 나를 새벽의 고요에 띄워두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조용히 옆에 있어준다. 애써 침묵을 쟁취하려 하지 않아도 침묵할 수 있는 새벽은 나의 요새가 되어 나를 지켜주고, 다독여주고 위로해 준다. 

자, 이제 다시 아침이 와도 좋다.

🌏 무너져내리는 행성의 소시민

여기 무너져내리는 걸 뻔히 아는 행성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젠가 모두 망한다는 걸 알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우리네 삶과 뭐가 다를까요? 

매 월 짤막하게 나름의 삶 속 틈을 엿보고, 그들의 인생을 토막낸 글을 공유 드려보고자 합니다 

✈️ 마지막 국민은 북쪽으로 간다

참으로 고요하다. 누워서 바라본 하늘은 어찌 저렇게도 청명한지. 그녀는 순간 ‘평화롭다’ 라는 단어를 떠올려 버렸지만, 이윽고 그렇게 느껴버린 자신에 대한 원망과 자책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파아란 하늘은 애릴 만큼 시리고 끔찍한 파랑이 되었다. 그녀를 뒤덮어버린 뻥 뚫린 하늘은 무거운 이불이 되어, 숨을 쉬면 쉴수록 오히려 목을 조여 오고 있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온 힘을 모아 큰 한숨을 내 쉬는 순간, 그 잔잔한 고요를 먹은 것은 둔탁한 모터 소리 였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큰 소리라면, 그들이 오매불망 기다려 왔던 바로 그 소리가 맞을 것이다. 가늠할 수 없는 세월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세상을 가르지르는 이질적인 소리는 그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녀는 누군가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말 충격적인 일을 순간적으로 당하게 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던. 이야기의 사실을 반증하듯 그녀의 신체 중 오직 동공만이 그 소리를 쫓고 있었다.     

시야 저 멀리 실루엣이 보이는 순간, 누워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그녀의 몸은 휘청거렸다. 그리고 뒤돌아 느적느적 걸어왔던 길을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랫니를 꽉 깨물고, 두 손은 힘을 다해 꽉 쥐어 아플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달렸다. 덕분에 몇 군데 긁힌 것 쯤이야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몇 천만 명의 인구로 번영해왔던 한 국가는, 이제 겨우 백 여명의 국민만이 남아있다. 까딱하면 곧 두 자리 수가 될 때 쯤, 오래도록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이다.  

“왔어요! 드디어! 왔어요!”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부르짖었지만, 목소리는 모터 소리에 잠식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일제히 허겁지겁 달려온 그녀와 하늘을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수송기 여러 대가 군집해 그들의 상공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누구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누구는 서로를 부둥켜 안았으며, 어느 누구는 사색에 잠긴 채 생각이 많아보였다.  

“왔어요. 드디어”

그녀는 두 손을 입 주변으로 가져가 한 번 더 토해내듯 크게 외쳤다.

“수송기가 왔습니다!”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수송기에서 내린 군인들의 군복에는 <국가평화연합군>이라는 뱃지가 달려 있었다. 그들은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했고, 데이터를 대조 하려 했지만 그 사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관계로 생존자를 확인하는 데에 예상보다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사이 그들과 함께 온 흡사 개를 닮은 로봇들은 사람들의 주변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로봇 개들은 진짜라도 되는 냥 서 있는 사람들의 발을 킁킁 훑기도, 차가운 온도의 등과 허리로 누군가의 무릎을 쓸면서 가기도 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대표로 보여지는 군인은 착용한 무선 통신기기를 통해 나즈막히 말했다.

“네 확인 완료 했습니다. 마지막 국민은 북쪽으로 간다.”

마지막 국민들을 모두 태운 수송기는 끝없는 바다를 한참 날았다. 온난화와 연속적인 대지진은 몇 세기에 걸쳐 그들의 가족들을, 친구들을, 기어이 인류를 사살해왔다. 언제는 한 도시 전체가 물에 완전히 잠겨버렸다고, 언제는 새로이 발견된 다수의 질병들로, 널뛰는 기온은 식량의 품귀현상으로, 그리고 그건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대기근이라는 시대를 만들었다. 인간이 그랬듯, 자연이 인간을 살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고, 정말 빠른 속도로 먹어치웠다. 그렇게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은 마지막 국민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 수송기는 ‘마지막 국민’의 타이틀을 거머쥔 자들에 대한 그들의 국가에서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자 보답이었다. 이제는 과거가 될 예정인 한 나라는 황폐한 영토만이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그 곳에 살았던 인류의 역사를 스스로 마무리하며.   

수송기 안의 사람들은 본인들의 고향과 고국에 대한 장례의식을 치르는 듯 일제히 조용한 침묵을 택했다. 두렵기도, 설레기도 했지만 너머의 삶을 제대로 상상해본 사람은 없었다.

수송기가 고도를 낮게 날기 시작했을 때 즈음 그녀는 움직이는 물체를 발견했다. 그녀는 돋는 소름에 옆에 앉은 이모를 툭툭 쳤다. 창문 아래의 광경을 목격한 그녀의 이모의 표정은 얼이 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울 것 같기도, 어떻게 보면 무서운 것 같기도 했다. 그 반응을 본 사람들도 하나 둘 씩 창문을 통해 밑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눈알을 굴리고 침을 꿀꺽 삼켰지만, 어느 하나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다. 그 기류를 읽은 군인은 아래를 흘깃 내려다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사람들의 국가는 투자를 하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무전으로 명령을 하더니 수송기는 곧장 더 높이 더, 높이 하늘위로 더,더,더 높이 치솟았다.

눈을 질끈 감으니, 수송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사람들의 잔상이 남았다.